<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신용목 산문집
신용목 시인의 첫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이 책을 읽었던 때는 따사로운 가을날 토요일 오후였다.
카페에 앉아 라떼를 마시며 한 줄 한 줄 삶과 사랑의 다양한 빛깔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지은이가 궁금해졌다.
시인이라는데, 이 사람의 시가 궁금해졌다.
글에 담긴 또렷한 감정과 또렷한 마음이 좋았다.
모호한 허세가 없는 담백한 글이다.
많은 문장들이 다가와 가슴이 벅차기도 했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어떤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서는 그의 시가 궁금한 적이 없었는데,
어떤 감독의 영화는 그의 에세이를 찾아 읽게 만든다.
글을 그 사람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것이 그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버린 자는 남은 생을 살아갈 필요가 없어.
아주 오래전 인간은 몸은 있으되 그 속에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울을 비춰도 자신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신이 ‘말’의 두 천사인 ‘진실’과 ‘거짓’을 시켜 거울의 문 너머 마음의 창고에 가 진실에게는 ‘행복’을, 거짓에게는 ‘불행’을 데려와 인간의 몸속에서 함께 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나란히 거울의 문을 지나던 진실과 거짓은 그만 좌우를 잃어버렸고, 마침내 몸마저 서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거짓이 행복의 문을 따고 진실이 불행의 문을 열어 마을로 내려가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로 인해 인간에게는 말과 마음이 생겼지만, 그 후로도 진실과 행복이 함께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실컷 원망하고 실컷 후회하고 실컷 자고 난 뒤에 일어나자.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가장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장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어느 것도 뒤늦은 것은 없다. 어쨌든 살아갈 날들 중에서 지금이 가장 젊은 순간이니까.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침몰하는 순간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이름이 그의 것이었던 시간이 지나고, 그가 그의 이름의 것이 되는 시간이 온다.
자신의 사랑이 잘못됐다고 불평하거나 사랑이 자신을 떠나간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사랑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을 선택했다고 믿는 것만큼, 아니, 서로가 서로를 선택했다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어려서부터 표준적인 삶에 내몰린 사람들, 어떤 목표를 위해 직선적인 길을 걸어온 이들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생으로 돌진해오는 영원의 신비와 잘못 든 길이 안내하는 외진 계곡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없다. 나는 방황했기 때문에 세상의 골목길들을 알게 되었다.
이번 생 또한 지난 생의 꿈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