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레 요코의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을 읽으며 평온함을 느낀다.
오랜만에 소설을 손에 잡으니 즐겁기도 하고 예전부터 눈팅만 해오던 그녀의 글을 처음 만나는 설레임이 더해져 작은 행복을 느낀다.
이 소설은 소금만 약간 들어간 플레인 베이글 같다.
한 조각을 뜯어 입안에 넣으면 밋밋하다 느껴지기도 하는 맛. 하지만 쫄깃함에 계속 손이 가는.
주인공 아키코는 쉰세 살로 세 살짜리 고양이 타로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싱글이다. 그녀의 엄마는 싱글맘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수프, 샌드위치 등 세트를 1천엔에 판매하는, 메뉴는 단 2가지 뿐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식당 운영 철학과 삶과 사람에 대한 시각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더욱 재미가 있다.
만약 내가 카페나 식당을 운영하게 된다면 이렇게 할 것 같아 하는 생각에서.
마흔을 앞두고 나는 40대는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고 있지만 그 이상은 그림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50대를 상상해보게 되었다.
이대로 어쩌면 행복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사소한 일에 웃고 때때로 울적하겠지만 그럭저럭 살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 해본다. 나의 50대를 상상하는 일.
그리고 궁금해진다.
무레 요코에게, 이 소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요리는 초보인 데다, 조리사 자격증도 없는 제가 어떻게......""처음에는 누구나 다 초보지. 자격증은 앞으로 공부해서 따면 되는 거고."
사람이 먹는 것을 만드는 일에는 굉장한 책임도 따른다. 그 점을 생각하면 자신이 이 일을 시작해도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도 밀려왔다. 아키코는 개업을 앞두고 불안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나날을 보냈다.
오만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아키코는 자신의 가게가 아무나 찾아올 수 있는 곳이기를 원치 않는다. 사람들 저마다 싫고 좋은 것이 있으니, 누군가가 자신의 가게를 싫어한다 해도 그건 당연한 일이다.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금방 싫증을 낸다. 오늘은 우리 가게를 찾아주었지만 날로 바뀌는 유행을 좇아 내일은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또 그때 생각할 문제다.
젊었을 때의 아키코는 화장품이든 뭐든 향료가 든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좋은 향이 나는 천연제품에 손이 간다. 목욕을 할 때도 라벤더나 로즈메리, 충동적으로 구매한 피톤치드 향의 입욕제를 번갈아 목욕물에 풀어 즐기고 있다.그날도 부연 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향을 맡으면서, 자신의 몸에서 이제 좋은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에 향이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키코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질냄비 뚜껑을 여니 김이 푹 피어오른다. 주걱으로 밥을 섞자 또 김이 오르면서 고소한 밥 냄새가 난다. 아키코는 그 순간이 좋다. 빵 굽는 냄새만큼이나 밥 냄새도 좋아한다. 밥 냄새를 맡으니 더욱 배가 고파졌다.
"회사 그만두고, 쉰 살이 넘어서 가게를 시작하다니 정말 대단해. 나는 그럴 용기도 의욕도 전혀 없는데. 이대로 나이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왠지 서글프지만 말이야."그녀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아키코는 용기를 낸 기억도 의욕을 품은 기억도 없다. 나름대로 고민은 했지만, 그렇다고 죽어라 분발한 기억도 없다. 주위 사람들 눈에는 쉰 살이 넘은 여자가 이를 악물로 전업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그런 절박함이 없었다.하지만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할 때나 좋은 식재료를 납품받기 위해 생산자와 업자들을 만나 얘기할 때, 가게를 내기 전에 경험을 쌓자는 생각으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긴장감을 갖고 성실하게 임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태평했던 게 사실이다.
열린 창문 너머로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자신이 이러고 있는 게 신기하다는 기분이 들었다.아키코는 가게를 접을 때까지 책임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정년이 따로 없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에 전업해 새로 시작한 일을 앞으로 몇 년이나 계속할 수 있을까. 옷 정리 좀 했다고 이렇게 몸이 피곤한데, 앞으로 가게를 잘해나갈 수 있을까."아키코는 항상 너무 진지해서 탈이라니까. 어디 한 군데쯤 느슨한 구석이 있어야 숨통이 안 막히지."
기분이 울적해지겠다 싶을 때는 언제나 타로를 돌아본다. 타로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부인은 자신도 들은 얘기라고 하면서, 동물은 인간과 달리 생사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애정을 쏟으며 자신을 키워준 주인을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이 필요 이상 슬퍼하거나 자신을 질책하면 동물도 마음 아파한다, 라고 위로해주었다.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우는 것도 좋아요. 몸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것은 내보내는 게 좋거든요.부인과 얘기하면서 가슴에 끼어 있던 안개가 걷히듯 슬픔도 누그러들었다. 슬픔이 조금씩 쌓여 앞으로도 울고 싶어지는 날이 있겠지만, 그때는 쌓인 것을 밖으로 내보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둘이서 키득키득 웃었더니,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도 같이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아키코는 그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면, 자신의 소박한 생활을 지금보다 한결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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